콜로키움
감성의 갈래
감성의 갈래
노양진 (전남대ㆍ철학)
1 머리말
모든 ‘학제적’(interdisciplinary) 탐구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큰 어려움을 불러온다. 학제적 탐구는 서구의 지적 세계에서도 아직 새로운 이름이며, 한국의 학계에서는 더더욱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동안 학제적 탐구가 보여 준 놀라운 진전은 그 가능성과 필요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국 감성체계’에 관한 연구 또한 그 낙관적 전망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작업과 관련해서 이 글에서 필자가 다루려는 문제는 크게 세 갈래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감성의 타자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이다. 한국 감성체계의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 감성의 타자와의 거리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 감성의 타자는 서구적 이성 개념이 유입된 20세기 이전과 이후에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둘째, 이성 개념이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로 담론의 층위 문제를 다룰 것이다. 두 갈래의 담론 층위를 구획해 냄으로써 ‘요청’으로서의 이성 담론의 본성을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구획하고, 감성의 담론이 ‘우리의 것’의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제안할 것이다.
셋째, 감성체계의 특수성/보편성 문제와 관련된 이론적 쟁점을 검토하고,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할 것이다. 이 문제는 차이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통해 다루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필자의 시각은 다분히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역사를 혼동의 역사로 보았으며, 그 혼동을 해소하는 것이 철학의 주된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철학적 개념이, 언어가, 이론이 우리를 혼동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혼동의 원천은 훨씬 더 원초적인 뿌리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천은 현재와 같은 몸을 가진 우리 자신의 인지적 조건에 있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 사이의 혼동이다.1) 한국 감성체계의 탐구는 새로운 한국적 감성의 창조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관습, 개념과 이론들에 의해 가려져 왔던 감성의 복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이론의 구성보다는 혼동을 부추겨 왔던 과거의 것들을 거두어 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한국 감성체계 연구의 현 상황에 관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제안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으며, 이 연구가 안게 될 모든 물음을 예상할 수도 없다. 대신에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학제적 탐구로서 감성체계 연구가 직면할 수 있는 개념적 복합성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더 섬세한 논의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이미 개별 연구자들의 논의에 반영되어 있거나, 또는 이미 공동 논의를 거친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이 글이 아직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추가적인 섬세한 물음들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제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